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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멍청하게도


"느.. 늦었어...!"

오늘이 처음으로 교황님 만나는 날인데, 늦다니.. 최악이다. 엄청 무섭다고 들었는데.... 혼나겠지?

최대한 빠르게 뛰며, 교황실 문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

"어서 와-!"

"....?!!"

갑자기 튀어나온 인영에,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뭐야, 이 사람은. 온몸을 망토로 칭칭 감싸곤.. 뭐야, 얼굴은 보이지도 않잖아.

".. 저기... 교황님만 있을 수 있는데요."

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교황님만 있으실 수 있다구요. 얼른 나가세요."

..나 참,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교황인데?"

"..네?"

그럴 리가

"내가 교황이라구-!"

.. 이제 보니 정신까지 나간 사람 같다.

"이상한 소리 하시지 말고 얼른..."

"..맞아요."

"....?"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갈색 머리의 여자가 머리 살짝 누르곤 날 보았다.

"..그 새ㄲ... 그분 교황님 맞으세요."

"..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추기경이니까요."

..이 정신 나간 사람이... 교황님이라고?

....망했다.




..다행히 그 사건은 잘 지나갔다.

생각보다 교황님은 좋으신 분이었다.

..루미나나 루메녹스로 워낙 놀러가시는 통에 유라 추기경님이 고생하시지만.

그래도 가끔 먹을 것도 주시고, 서류도 도와주신다.(분신이 하는거지만, 어쨌든 교황님의 의지일거라 믿는다.)

오늘은 교황님이 루미나에 갔다가 추기경님에게 잡혀오셨다.

..꽤나 슬픈(?) 듯 해보이시는데, 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교황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

..말도 못할 정도로 슬프신거구나....

"..쩝쩝"

..잘못 들었나?

...입술이 움직이는 거 같기도..아닌가?

"..이 쿠키 지짜 마이다-!"

...과자 먹는 거였냐구요.

"메드라이도 머그래?"

그리 말하며 제게 어느새 빵빵해진 볼로 제게 말하는 교황님 보곤, 참을 수 없어 웃음 풋, 터트렸다.

"머가 우겨-!"

한 번 터진 웃음은, 멈출 수 없더랬다.

"..이사해, 메드라이."




어느 새 계절들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교황님과 나 사이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루미나에도 가보고, 꽃도 구경했으며, 사소하거나, 혹은 서로 깊게 연관된 대화도 했었다.

...눈치 챘을 땐 이미 대주교와 교황 관계의 선은 한참 넘어버린 뒤였다. 이미 교회 내에선 사귀는걸로 공표까지 났으니까.

..이 감정조차도 더 이상 주체가 안 됬고.

망할

언제부터였을까.

그저 정신 나간 사람이, 점점 귀엽게 보이기 시작한거다. 미쳤어, 메들라인 델로스.

..언제까지 숨겨질까.

혹시, 교황님도, 나를......

..그럴 일 없다.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되었다. 오늘은 같이 벚꽃이란 것을 보러가기로 했다. ..이것도 교황님은 그냥 놀러가는 거처럼 느끼시겠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벚꽃을 보고, 웃고 떠들며 먹다보니 어느 새 밤이 되었다.

하늘에 별이 수놓인 것이, 장관이었다.

..제 손에 가죽 장갑의 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닐 터였다.

"......?!"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잡은거야? 내 손을? 교황님이??

"..싫으면 말해."

평소와 다르게, 살짝 가라앉은 어투로 교황님이 말했다. ..이거 맞는거야? 진짜로?

"..시..시..실..싫지는 아..아않구요."

말을 계속 더듬거렸다. 바보, 멍청이.

"..그럼 됬어."

손 끝만 잡던 손이, 얼씨구, 깍지까지 끼신다.

...이거 그린 라이트 아닌가?

............

..그래.

이때 아니면 언제 말하겠어.

"..교황님."

그가 내게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저는....."

교황님을.....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가로막았다.

"알아."

"..네?"

"안다고."

"....네?"

"사귀는거, 좋아-!"

그리 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은 교황님, 아니, 당신이 날 안더래.

"..저도요."

....이게 무슨 전개람.

.....아무튼 좋은게 좋은거다.

..앞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교황님의 눈가에, 물기가 있는건 기분 탓일거다.






오늘은 새로운 대주교가 오는 날이다-!

깜짝 놀래켜줘야지~!

핫, 얘 반응 재밌네-?

..걔랑 조금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호기심이였다.

토끼눈으로 멀뚱멀뚱 제를 바라보는 너가, 옛날에 그이랑 닮았으니까.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옛날 추억이 나서 꽃도 보러가고, 했던거다.

그런거다.

인간은 영 믿을 수 없다.
언제까지고 내 곁에 있을 듯이 말해주면서

100년도 채 옆에 못 있어주니까.

상실감은, 한 번으로 족한다.

그 지옥도를 다시 맞이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나라는 놈은 달라지지가 않았다.

처음엔 너를 그이에 투영해서 바라보았지만.

점점 그이와 닮은 너가 아닌, '메들라인 델로스' 라는 인간 하나 자체에 빠져들고 있었다.

..위험하다.

안 돼.

넘어가선, 안 된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테스트 해볼까.




다 사라졌다.

손을 잡고, 내게 무언가 말할려는 너의 눈동자를 보고 있잖니

테스트고, 가치고 뭐고 다 필요 없어졌다.

너의 그 미소가, 그 눈동자가 감히 가치가 매겨질 수 있는 것일까.

감히 그것을 내가 보아도 되는가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단단히 씌였다.

....뭐, 상관 없다.

몇십년이라도, 햇살을 볼 수 있다면

몇백년, 몇천년이라도 어둠 속에 처박혀 있을 자신이 있었다.

현재의 너를 위해, 미래의 나를 버리며

슬픔, 막연함, 두려움, 걱정

이 모든 것이

눈물 한 방울에 모두 담겨 내려가더래.